
줄거리
영화 <보스>는 거대 조직 ‘용두어미파’의 보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조직은 당연히 새 보스를 뽑아야 하는 상황에 몰리지만, 문제는 아무도 그 자리에 앉고 싶어 하지 않는다. 평소 같았으면 피 튀기는 싸움이 벌어졌을 법한 자리인데, 여기서는 “나 말고 딴 사람 하세요”라는 분위기가 흐르니, 시작부터 톤이 묘하게 웃기다.
유력 후보로 꼽히는 인물은 세 명이다. 먼저 2인자 순태는 조직에서 인정받는 브레인이지만, 이미 마음은 조직 밖에 나가 있다. 그는 아내와 딸과 함께 조용히 중식당 ‘미미루’를 운영하며 평범한 삶을 꿈꾼다. 피 묻은 돈이 아니라 뜨거운 웍에서 튀어나오는 불맛으로 먹고사는 인생을 원한다. 또 다른 후보 강표는 출소 직후에 조직에 복귀하자마자 보스 후보로 떠오르지만, 정작 본인은 ‘보스’ 자리보다 ‘탱고 댄서’에 더 진심이다. 거친 주먹 대신 우아한 스텝으로 무대를 밟고 싶어 하는 캐릭터라, 조폭물에서 보기 힘든 독특한 욕망을 보여준다.
딱 한 명, 판호만이 진심으로 보스 자리를 노린다. 하지만 조직 내에서 신뢰도는 바닥이라, 본인이 아무리 어깨를 쫙 펴고 나서도 주변의 반응은 영 시큰둥하다. 여기에 배달원으로 위장해 조직에 들어와 있는 언더커버 형사 태규까지 합류하면서, 누가 보스를 차지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보스를 피하느냐를 둘러싼 기묘한 눈치 싸움이 벌어진다.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빠져나가려다 보니, 자연스럽게 오해와 사고가 연쇄적으로 터지고, 조직은 점점 더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이야기 후반부로 갈수록 ‘지는 사람이 보스가 된다’는 말도 안 되는 룰이 등장하면서 상황은 더 코믹하게 꼬인다. 순태와 강표는 서로 보스가 되지 않기 위해, 일부러 싸움에서 지려고 애쓰는 이상한 결투를 벌인다. 그 과정에서 조직 내부에 숨어 있던 진짜 배신자와 권력의 실체가 드러나고, 관객은 한편으로는 통쾌한 액션을, 한편으로는 “도대체 보스 자리가 뭐라고” 싶은 허탈한 웃음을 동시에 맛보게 된다. 전통적인 조폭 영화처럼 비극과 피바람으로 끝나기보다는, 책임과 권력의 무게를 코믹하게 비틀며 가볍지만 나름의 여운을 남기는 방향으로 마무리된다.
등장인물
순태(조우진)는 용두어미파의 실질적인 2인자로, 모두가 인정하는 보스 0순위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권력 따위에 미련이 없다. 이미 마음은 가족과 함께 운영하는 중식당 ‘미미루’에 가 있고, 인생 2막을 ‘사장님’으로 살고 싶어 한다. 조직에서는 냉정하고 계산적인 전략가인데, 집에서는 딸에게 약한 순한 아빠의 얼굴을 보여주며 갭 차이로 웃음을 만든다. 이 캐릭터를 통해 영화는 “조폭도 결국 삶을 꾸려 가야 하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지점을 은근하게 드러낸다.
강표(정경호)는 출소 후 복귀하자마자 보스 후보로 주목받지만, 정작 본인의 로망은 탱고 댄서다. 주먹질로 세상을 푸는 데에는 이미 흥미를 잃었고, 아름다운 음악과 춤에 더 큰 매력을 느낀다. 거친 외모와는 달리 춤출 때만큼은 눈빛이 달라지는 인물로, 조직 내 다른 조직원들과 달리 완전히 다른 방향을 바라보는 캐릭터라 신선하다. 권력과 야망 대신,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것을 향해 나아가고 싶은 ‘퇴사 꿈나무’ 같은 인물이라고 보면 이해가 쉽다.
판호(박지환)는 세 후보 중 유일하게 보스가 되고 싶어 하는 인물이다. 문제는 아무도 그를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 말 한마디 할 때마다 어디선가 삐걱거리고, 큰소리만 치다 상황을 더 꼬이게 만드는 타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보스 자리를 노리는 모습이, 한 편으로는 안쓰럽고 한 편으로는 웃기다. 이 캐릭터 덕분에 영화는 ‘권력욕’마저도 코믹하게 소비한다.
태규(이규형)는 조직 안에 잠입해 있는 언더커버 형사다. 배달원으로 위장해 조직 곳곳을 드나들며 정보를 수집하지만, 본인도 점점 이 진흙탕 권력 싸움에 말려 들어가면서 예상치 못한 웃음을 준다. 원래는 냉철하고 계획적인 수사관이어야 할 인물이, 조폭들보다 더 허술해 보이는 순간들이 나오면서 코미디 포인트를 만든다.
인술(오달수)은 겉으로는 조직의 든든한 이사처럼 행동하지만, 뒤로는 자신만의 계산을 굴리는 숨은 플레이어다. 연륜과 무게감 있는 말투로 후배들을 이끌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야기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진짜 속내가 드러나며 반전을 이끈다. 이 인물을 통해 영화는 “누가 진짜 보스인가”라는 질문을 한 번 더 던진다. 전체적으로 <보스>의 캐릭터들은 전형적인 조폭 영화에서 보던 단순한 ‘의리 vs 배신’ 구도가 아니라, 각자의 삶과 욕망 때문에 권력을 피하거나 밀어내는 방향으로 설계돼 있어 더 가볍고 코믹하게 다가온다.
총평
<보스>는 진지하게 무게 잡는 조폭 영화라기보다는, 명절이나 연휴 때 가족·친구와 함께 보기 좋은 코믹 액션에 가깝다. ‘보스 자리를 두고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인다’가 아니라, ‘보스 자리를 어떻게든 피하려고 발버둥 친다’는 설정이 꽤 신선하게 다가온다. 책임과 권력의 무게를 비장하게 묘사하기보다, “아무도 하기 싫은 자리”로 만들어 놓고 거기에 웃음을 씌운 게 이 영화의 포인트다.
배우들의 케미는 분명한 강점이다. 조우진은 특유의 안정감 있는 연기로 조직의 브레인이자 가장다운 순태를 설득력 있게 끌고 가고, 정경호는 조폭과 탱고 사이를 오가는 이 괴상한 캐릭터를 능청스럽게 소화한다. 박지환은 욕망만 앞선 판호를 통해 웃음을 터뜨리고, 이규형은 언더커버 형사 캐릭터에 특유의 허당미를 얹어서 분위기를 가볍게 만든다. 여기에 인술 역의 오달수가 중후한 톤으로 이야기를 잡아주면서, 캐릭터 조합 자체는 꽤 매력적인 편이다.
다만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전체적인 서사 흐름이 아주 매끄럽다고 보기는 어렵고, 에피소드식으로 웃음 포인트를 쌓아 가다 보니 중간중간 힘이 빠지는 구간도 있다. 캐릭터 각자의 꿈과 욕망을 건드리긴 하지만, 그 감정선을 깊게 파고들기보다는 웃기고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데에 더 초점을 맞춘 느낌이다. 그래서 “그냥 웃고 나오기에는 괜찮은데, 오래 남는 영화냐”라고 물으면 애매하다고 느낄 관객도 있을 듯하다.
그럼에도 <보스>는 방향성을 분명하게 잡고 간다. 관객에게 거창한 메시지를 강요하기보다는, “조폭도 하기 싫은 자리가 보스다”라는 웃픈 전제를 내세우고, 그 안에서 책임과 권력, 그리고 각자의 평범한 꿈을 가볍게 비틀어 보여준다. 심각한 영화는 부담스럽고, 오랜만에 극장 가서 그냥 편하게 웃고 싶을 때 고르기 좋은 타입의 작품이다.